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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성 살인사건]야구선수에서 사업가로 네모녀 살인범으로 인생을 한방에 날려보낸 이호성 ­

9010-- 2020. 7. 7. 08:41

이호성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1990년 해태 타이거즈에서 데뷔했으며 입단 첫해인 1990년과이듬해인 1991년에 2년 연속으로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을 하며 활약했던 촉망받던 야구선수였죠, 해태가 1990년대에 차지한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서 모두 주축으로 활약했고, 1980년대 김성한과 한대화의 뒤를 이어 홍현우, 이종범 등과 함께 1990년대 해태 중심 타선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데요.바틀비씨는 야구 유니폼에만 관심있던 시절이라 기록에 의존하지만 잦은 부상으로 기대했던 바만큼성적은 거두지 못하고 이후 플레잉코치로 지내다가 선수생활을 마감했던 것으로 이호성 선수에대한 기록은 그렇게 나와 있군요.이 사건이 발생했을때 남편에게 이호성 선수가 유명한 선수였냐고 묻자유명한 선수라고 하니 아...그런가보다 했는데요.키180센티에 이런 강인한 외모를 가진 그가 사업가에서 살인범으로 전락하게 된 아이러니가참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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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선수협과 관계가 안좋았고 후배 야구선수들을 지도중 폭행했다는  안좋은 이야기들이 들리면서은퇴를 한 이호성은 예식사업에 뛰어들면서 잘나가는 사업가로 변신했죠.호성 웨딩문화원을 설립하여 직원은 70여 명에 연간 매출액이 70~80여억 원에 달할 정도로 번창하였고, 장성호를 비롯한 많은 수의 기아 선수들도 결혼식을 할 때 이 호성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했답니다.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고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다가 끝내 파산하게 되고 말았는데요.


순천에서 실내 화상 경마장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100억 정도가 소요되는 마권사업에 자본금이 모자라자 가족들을 보증인으로 해 10억 원을 빌렸고, 그것도 모자라서 은행에 담보를 잡고 35억 원을 빌렸다네요. 하지만 주민들의 도박장 반대 여론에 밀려 경마장 사업은 백지화되었고, 이호성은 청와대에까지 탄원서를 올려보았으나 무소용이었고 결국 100억 원이라는 초대형 부도를 내고 사업을 대차게 말아먹게 되었죠.도박장 사업은 말 그대로 복불복인데, 철저한 사전준비나 조사도 없이 남의 말만 믿고 사업자금을 몰빵한 게 부도의 원인이 되었다고합니다만...  이 사건이 화제가 될 당시 일부에서는 그가 소위 '바지사장'에 불과했고, 휘둘린 결과가 도박장 사업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또, 웨딩홀 사업도 해가 갈수록 잘 안 되어서 도박을 한 결과라는 여러 말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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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잊혀져가던 파산한 야구선수가 어느날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장식하죠.창천동에 사는 네 모녀의 실종사건에 유력한 용의자가 이호성으로 보도되었기 때문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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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은평구에서  참치집을 운영하던 이혼녀인 김씨와 교제중이었던 이호성이 그녀와 아이들의 실종에중요한 용의자였기 때문이죠.그리고 그가 짐가방에 여러번 무언가를  나르던 모습이 아파트 CCTV에 그대로 노출되고인부들을 시켜 자신의 선산묘를 파도록 하였다는 사체 유기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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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이호성을 지목했지만 방송사에 보도를 하지말것을 당부했는데요.SBS방송사가 그대로 방송을 먼저 하는 바람에 이호성을 검거하지 못하고 결국 코너에 몰린그가 마포대교에서 투신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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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성이 자살하고 나서 많은 사건에 얽힌 의문점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미스테리로만남은 사건인데요.왜 적은 액수의 돈으로 그가 네명의 목숨을 살해해야했는지는 모두가 의아해했던 부분이었습니다만그 배후에는 그와 내연관계의 차씨라는 여성이 있었고 죽기 전까지 그녀와 함께 있었다니 모든 미스테리는 차씨만이 알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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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분석하기로는 이호성이 자존심이 강하고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자격지심이 폭발하여살인까지 이어졌고 이를 목격한 딸들까지 살인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으로 사건이 정리되기도했는데요.사건이 미스테리하게 남은 것보다도 한 사람의 끝없는 추락이 찹 씁쓸합니다.그로 인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네 모녀의 죽음도 안타깝기 그지없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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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타구를 날리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타자였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서인생의 영원한 나락에 빠져들게 되고 야구선수로서 활동한 기록들도 평가받지 못하는안타까운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면서 사건을 다시 기억해낼때마다 인간의 어리석음에 깊은 탄식을 불러일으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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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방송된 KBS2 '속보이는 TV'에서 다시 다뤄진 이호성 살인사건 파장이 크다. 이호성 살인사건은 용의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점에서 명확한 범행 동기 및 과정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황상 증거에 의한 추론이 있을 뿐 끔찍한 범행의 전말은 여전히 안개 속에 남아 있는 부분들이 있다.그러나 일부 야구팬들은 이호성의 전성기를 떠올리며 그의 기이하기까지 했던 범행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호성 살인사건의 주된 동기로 지목된 부분은 자금난. 이호성은 애초 웨딩사업을 시작해 돈을 벌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인연이 있는 야구선수들이 줄줄이 결혼할 때마다 그의 웨딩홀을 사용하는 등 연간 매출액이 70~80억에 달했다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그는 실내 화상 경마장 사업에 뛰어들었고 가족들을 보증인으로 하는 등 돈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이 백지화되면서 인생 2막의 위기에 처했다. 이호성은 당시 청와대에까지 탄원서를 올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실패 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운동선수만 하다 사회 물정을 너무 몰라 벌어진 일이다. 사회 경험이 없어 아무나 쉽게 믿었던 것이 큰 화근이었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결국 이호성이 살인사건의 범인이 된 데는 이 사업 실패가 주 원인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유독 스포츠선수들이 화려한 인생 1막을 마친 후 인생 2막길에서 좌절을 겪는 경우가 많은 데 대해 스포츠 업계 전문가들은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 선수로서의 성공만을 위해 한 분야에 올인, 인성이나 사회화 등 스포츠 이외의 분야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더욱이 화려한 선수시절만을 떠올리며 사업가로서 태도와 자세를 갖추지 않은 점도 스포츠선수들의 실패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를 두고 두산 투수 출신 이경필 해설위원은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밑바닥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뼈 있는 조언을 남긴 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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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태어난 이호성 선수는 광주제일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이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해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프로야구선수 협의회 회장을 지냈으며 2001년부터는 기아타이거즈 소속 선수로 활동했다.한편 ‘이호성 살인사건’이란 2008년 발생한 사건으로 이 선수가 내연녀 김씨와 그의 세 딸을 살해한 사건을 이른다. 그는 서울 창전동 등지에서 김씨와 세 딸을 살해했다.


 이호성 살인사건의 범행 동기가 미궁으로 남았다.20일 방송된 KBS2 시사프로그램 '속보이는TV 인사이드'에서 파헤친 이호성 살인사건의 전말이 화제가 되고 있다.이호성 살인사건은 범죄 심리 전문가들이 말하길 "드라마 내용이나 영화 내용의 소재로 쓰일만큼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사건이다. 또한 아직까지 범인의 범행 심리가 미궁으로 남았다. 이호성 살인사건은 10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 네 모녀가 살해된 사건이다. 참치 전문점을 운영하던 김씨는 세 딸,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간다고 말한 뒤 15일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를 수상하게 생각한 김씨 오빠가 경찰에 신고를 하며 수사가 시작됐다.김씨 아파트의 CCTV 영상에는 김씨가 여행을 간다던 저녁 9시께 한 남성이 네 모녀가 살고 있는 집으로 큰 수레를 들고 들어갔고, 6분 뒤 손수레에 큰 가방을 싣고 나왔다. 그 후에도 30분간 수차례에 걸쳐 김씨 집에서 가방을 날랐다. 총 4개의 가방을 옮긴 인물은 놀랍게도 프로야구팀 해태 4번 타자 이호성이었다.  


이호성은 일가족 4명의 실종 사건과 관련해 유력한 용의자로 공개수배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한강에서 투신했다.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야구 스타는 순식간에 살인 용의자가 돼 목숨을 끊었던 일로 충격을 자아냈다. 이후 이호성 선친 묘에서 네 모녀의 시신이 발견됐다. 당시 이호성에 고용된 인부들은 대디­ 묘에 표지석을 세워야 된다는 말에 작업을 했지만, 차 뒷좌석 검은 가방 때문에 뭔가 께림칙했다고 했다. 또한 이호성이 깊게 파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이호성은 왜 네 모녀를 살해했을까. 당시 경찰은 이호성이 채권, 채무 관계 등으로 해서 재물 관계로 범행을 한 것으로 봤다. 이호성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1년전 이호성은 김씨의 가게에서 손님과 사장으로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 가게 종업원들은 이호성이 여자에게 잘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고 했다. 또한 이호성은 김씨의 세 딸과도 친부녀 관계처럼 잘 지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호성이 왜 네 모녀를 살해했는지 범행 동기가 쉽게 납득 되지 않았다.이호성의 금전 관계 때문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이호성은 2001년 선수 은퇴 후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예식 사업은 성공적이었지만, 100억 원을 끌어모아 스크린 경마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시민 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후 사기죄로 구속되기까지 했다. 여기에 김씨는 실종되기 3일전 정기 예금을 해약해 1억7천만 원을 실종 당일 모두 찾았고, 여행용 가방에 돈을 담아 흰색 승용차에 올라타는 모습이 목격됐기 때문. 또한 이 돈 중 대부분을 이호성이 사용한 것이 확인됐다.  하지만 범행을 저지르기엔 액수가 너무 적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가운데 이호성의 내연녀 차씨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찰의 수사가 한창이던 때 경기도 한 경륜장에서 두 사람이 자주 만난 것이 목격된 것은 물론 김씨의 1억7천만 원 중 4천만 원을 차씨에 넘겨준 정황도 밝혀졌다. 또한 이호성이 투신 전까지 내연녀 차씨와 있던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한 범죄 심리전문가는 "차씨라는 존재를 김여인이 알았다면 그걸로 인해 극단적인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김 여인을 살해하고, 그 순간에 현장을 목격한 자식까지 죽이며 연쇄적 살인으로 진행됐을 가능성도 추론해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차씨가 언론과 나눈 인터뷰에 따르면 "이호성이 원해서 한 일이 아니고,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결국 공범 가능성까지 제기됐지만, 범죄심리전문가는 "시신 묻는 현장에서 이호성 외의 다른 사람이 발견되지 않은 점, 감식을 했음에도 타인의 지문이 나오지 않은 점, 용의자들 통신내역 추적에서도 용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호성 살인사건에서 두 딸의 사망원인은 목을 졸라 사망한 질식사로 밝혀졌다. 한 범죄 심리전문가는 "눈을 보며 목을 조른다는 건 감정이 높지 않으면 하기 어렵다. 어린 아이를 자기 손으로 목을 조르고 죽는 걸 다 본다. 그건 보통의 상태와 다르다. 범죄 심리에서 행동을 평가할 때 액사(손 졸림사)는 특별한 관계라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큰딸 사망원인은 수 회 둔기에 의해 머리를 가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 심리 전문가는 "애초 아파트에 같이 있었다면 같은 방법을 취했을텐데 큰딸은 밖에 있었다"고 했다.이호성은 평소 성격이 다혈질이며 경기 중에도 욱하는 상황이 많았다고 했다. 범죄심리전문가는 "이호성은 어릴 때부터 캡틴이었다. 해태 주장을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고 존경받던 프로야구 선수이자 지역의 큰 선배인데 이런 사람이 스스로를 좀 못 견뎠을 것 같다. 작은 돈에 탐하고 있는 본인에, 자격지심이 극단적 폭발적 분노로 나왔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잠재된 분노가 터져나왔다고 보기에는 집 상태가 너무 완벽했다고. 김씨의 방과 매트리에선 아주 소량의 혈흔만 나왔고 네 모녀의 사체를 선친 묘 근처에 묻었다는 점도 우발 범죄로 보기엔 어려웠다. 한 범죄 심리전문가는 "이호성이 지능적으로 생각했을거다. 부모님 묘지, 조상님 묘지는 굴착기 공사로 팔 일이 없고, 땅을 파고 길을 낸다고 해도 산소는 안 건드린다"고 했다.